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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나절에 강화도를 나와 무작정 남쪽을 향해 내려간다. 의왕쯤 가서 오산교회를 부목사로 섬기는 신동욱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부목사 휴가가 이때쯤일 것 같았는데 역시나 휴가로 속초에 가 있다고 한다. 남해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이후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에만 담고 있다가 길 나선 김에 들러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올라오는 길에 들러보마고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안성에 있는 새생명교회 정진우 목사에게 들러보기로 하였다. 교회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정 목사도 대학 졸업 후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었지만 생각난 김에 한 번 들러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위치를 잘 몰라 지도와 김영곤 목사가 만든 네비게이션을 잠깐씩 보면서 어찌어찌하여 찾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시골마을이다. 논도 있고 우사도 있고 또 포도나무밭도 있다. 마을 가구수가 그리 많지도 않다. 찾기는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 헤매지도 않았다.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갔는데 다행히 집에 있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계집아이가 아무래도 정 목사 딸일 것 같아서(정진우 목사는 딸이 셋이나 된다. 그중 하나는 내 덕분에 낳았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 한다?!) 물으니 역시 그렇다. 딸아이의 부름에 밖으로 나온 정 목사는 나를 보더니 ‘무슨 일이시냐’고 묻는다. 헬멧을 썼다 벗었더니 머리가 엉망이긴 하지만 나를 못 알아본다니! 택배기사쯤으로 생각했나보다. ‘아니, 방목사도 못 알아 봐요?’ 하자 그제서야 알아보고 눈이 휘둥그레 깜짝 놀란다. 그의 깜짝 놀라는 모습에 나의 반가움도 커진다.  



 



정진우 목사는 나와 마찬가지로 2000년부터 목회를 시작하였다. 정 목사는 나이 많은 동기 형의 뒤를 이어 안성의 새생명교회로 부임하여 올해로 10년째(2009년 기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점심 때를 놓쳐 염치 불구하고 사모님께 점심상을 부탁하자 굴비를 굽고 아욱국을 내놓는다. 맛있게 잘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그 밥상은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그 반찬은 새생명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비전술래’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반찬이라고 했다.  



 



마주 앉자 정 목사는 자신의 목회이야기를 신나게 한다. 목사들은 목회 이야기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는지! 그만큼 목회에 몰입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정 목사가 처음 이 교회에 왔을 때는 재적교인은 20명에 불과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120명을 헤아린다니 10년 만에 600% 성장했다.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 정도면 교회성장 세미나 강사로 나가도 되겠다고 했다. 성장이 멈춘 오늘날 이 수치만으로도 충분히 놀랄만하다. 전임자가 시작한 예배당 건축을 마무리 한 것도 정 목사란다.  



 



예배당 옆에 사택과 식당을 짓고 컨테이너 세 개를 이어 만든 비전술래 공부방도 진짜 학교 교실 같이 잘 꾸며놓았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지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출석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전체 인원이 180명인데 그중 30명이 새생명교회에 출석한다니 거의 그 학교를 접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졸업식에 선물도 준비하여 학교를 지원했다고 한다. 진정한 접수이다. 중고등학생들도 공부방에 와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간다. 



 



이 마을은 좀 신기하다. 내가 본 시골마을은 노인네들만 있던데 이 마을은 인구도 증가하였고 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당연히 아이들도 많다. 보기 드문 마을이다. 또 이웃마을, 멀리는 천안에서 이 교회를 찾아온 교인들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교회, 도시교회도 마찬가지로 인구연령비 구성꼴이 역삼각형이고 노년인구가 많은데 새생명교회는 직사각형이란다. 그만큼 인구연령 구성이 다양하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의 미래는 밝다. 자연적인 증가로만 봐도 10년 후면 300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불교신자도 천연덕스럽게 교회에 드나들면서 아이들을 맡긴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는 거의 매일 왔다갔다 해서 얼핏 보면 새생명교회 교인인줄로 착각할만하다. 불교신자만이 아니라 이웃이 편안하게 교회에 드나든다. 마을회관 혹은 동네 당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침 이웃의 젊은 아이엄마가 서너 살 정도 된 딸을 데리고 교회에 놀러 왔다. 아이는 아침부터 교회에 가자고 떼를 쓴다고 한다. 역시 교회에 등록한 교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차도 얻어 타고 집 앞에서 내린다. 교회라는 종교적 울타리가 무의미하다. 교회가 마을 사람들 어느 누구나 와서 쉬다갈 수 있는 놀이터인 셈이다. 



 



정진우 목사는 거의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차량운행을 한다. 가까운 곳에 사는 공부방 아이들도 차로 데려온다. 인적이 드문 동네에서 만에 하나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걱정해서이다. 초등학교가 파할 때 즈음에는 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한 차 가득 싣고 공부방으로 온다. 중학생들이 미처 집으로 오는 차를 타지 못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또 그들을 데리러 기꺼이 나선다.  게다가 매일 같이 아이들 저녁을 해 먹인다. 정 목사 내외가 요리와 식사준비를 도맡아 한다. 서울에 사시는 정 목사 어머니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려오셔서 공부방 일을 도와주신다. 그렇게 새생명교회의 오후는 번잡하고 바쁘다.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된다. 그렇게 10년을 지냈다. 여기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정 목사의 노력이 더해져 600% 성장이라는 열매를 맺었음을 잘 알겠다. 시골의 교회로 임지를 받아 나와 3년 버티다가 안수 받자마자 다른 교회로 떠나버리는 젊은 목회자들 현실을 고려할 때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작은 교회에서는 오래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 받을만하다. 그리고 버틸 때 반드시 그 시간에 대한 결실을 얻게 된다. 이런 사실을 정 목사는 깨달은 것이다.



 



사실 정 목사는 탈진 직전이다. 학기 중에는 오늘과 같은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 공부방에 관련된 역할만으로도 하루가 버거울 지경이다. 게다가 한 주에 한 번은 공부방 교사들과 회의도 해야 한다. 예배당 보수공사도 정 목사의 몫이다. 심방이며 교회업무까지 겹치면 매일매일 파김치가 될 수밖에 없다. 방학이면 오전부터 바쁜 일과가 시작된다. 방학에는 아이들이 오전부터 공부방에 나오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는 아이들 점심과 저녁, 두 끼를 준비해야 한다. 차량운행이며 식사준비로 정 목사 내외는 벌써 몇 년째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마음이야 감사하고 행복할지 몰라도 쉼 없이 일하니 몸은 분명 힘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다가 정진우 목사는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 빚도 있고 운영비도 만만치 않게 드니 사례비를 받을 돈이 없어 그냥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얼마나 버틸까 부부는 걱정했지만 아직까지도 파산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니 이제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고 큰 소리를 친다.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음식을 먹은 엘리야의 심정을 깨달은 것일까, 진짜 목사 같다.  



 



정 목사가 아쉬워하는 것은 그가 홀로 남겨져 있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동료 목회자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른다. 찾아주는 이도 없고 찾아다닐 시간도 없다. 그래서 외로움이 크다. 나를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보다. 힘에 부치는 목회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외로움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만한 친구가 없는 듯하다. 이런 고립된 모습은 비단 정 목사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 목회자들, 소신껏 외길을 꿋꿋하게 가는 이들이 다 이런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소신으로 목회하는 이들이 함께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정보도 나누고 서로를 달래주고 격려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데 정 목사도 동의한다. 최소한 강단교류라도 좀 해보고 싶다고 하여 올해가 가기 전에 나와 한번 교류해보자고 했다.  



 



정 목사 댁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의 목회 이야기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그칠 줄 몰랐다. 이제는 나도 떠나야 할 시간이다. 헤어짐은 아쉽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친구였기에 돌아서는 뒷모습이 더 야속해 보였는지 금새 표정이 쓸쓸해졌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해본다. 정 목사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홀로 고립된 이들을 한 자리로 모아 얼굴을 맞대게 할 수 있는 결실을 맺으면 좋겠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정진우 목사가 열심히 목회한 결실로 나까지 자랑스러워지는 마음으로 새생명교회의 문을 나섰다.



 



후기



그날의 만남 이후 의미 있는 만남을 지속하지는 못했다, 목회라는 것이 이처럼 삶의 여유를 빼앗는가보다. 이날의 만남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진우 목사가 서울의 출신교회 부목사로 이임했다. 새로운 직위와 임지는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야생마같이 거침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새생명교회와는 달랐다. 함께 협업하는 대형교회 분위기도 적응이 쉽지 않았었나보다. 가끔 전화로 통화하면서 힘겨워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저녁나절에 만나서 밥 한 끼 먹을 기회도 없었다. 가장 최근에 한 통화에서 정 목사는 조만간 그 교회를 사임할 것이라고 했다. 어디 갈 곳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듯 했다. 열심히 목회한 십수 년, 그 결과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라니! 그러나 이것이 또한 우리 자신의 현실이라는 것에 마음이 쓰리다. 이 글이 정진우 목사의 마음을 또 한 번 아프게 하는 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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