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리의 수탉, 미안하고 고맙다.

by 방현섭 posted Apr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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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닭을 잡아봤다.

여기서 '잡았다'는 것은 움켜잡았다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죽였다는 의미이다.

시골집 내려갔다가 부모님이 닭을 키우시는데 난 닭 한 번 못 얻어먹었다고 하니 닭을 나보고 잡으라신다. 닭장에 들어가 청계 수탁을 네 마리나 포획하여 나왔다.

 

이제는 살생을 할 시간. ㅡ_ㅡ;;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전은 처음이다.

닭 날개를 겹쳐서 발로 받고 목 주위의 털을 조금 뽑은 다음 칼로 목을 반쯤 잘라내고 피를 흘려보낸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잡으시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 것 같다. 할머니는 돼지도 직접 잡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지금은 편안한 곳에서 행복하게 계시겠지.

 

역시 난 살생에 거침이 없었다. 마지막에는 칼질을 너무 세게 하여 머리가 댕강 분리됐다.

 

닭은 목이 잘린 후에도 꽤 오랫동안 퍼득인다. 목이 잘린 상태로 26일을 생존한 닭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나마도 목에 영양제 주사를 놔주는데 목에 염증이 생겨서 죽은 거란다. 그래서 머리 나쁜 사람에게 '닭대가리'하고 하는 거란다.

 

아무튼 그렇게 수탉 네 마리는 우리 가족의 영양보충을 위해 희생되었고 덕분에 아내 역시 난생 처음으로 닭털을 뽑는 일에 동원되었다. 징그럽다고 몸서리를 치면서도 끝내 어머니와 같이 털을 다 뽑아냈다.

닭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맛있게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

비좁은 캐비넷식 닭장에서 키운게 아니라 그런지 살이 좀 질긴 감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영양이 높은 거겠지.

 

닭들아,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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