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의 대북인도지원사업과 향후 계획
함께나누는세상 사무국장 방현섭
2020년은 함께나누는세상의 대북인도지원 사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 재단법인 남북평화재단과 함께 시작하여 달려온 10년을 마감하고 재단법인 함께나누는세상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2020년을 역동적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만 연초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공격으로 전 세계가 마비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로 인하여 국제사회가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시행하고 있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외국의 원조를 받지 않겠다고 공언하였기에 인도지원사업이 쉽게 진행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보건의료 시스템이 열악하여 감염 확산에 특히 취약한 북한이 전면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함으로 더욱 막막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또 남한의 한 대북 사업자가 북측과 접촉하여 물자를 보낸 것이 언론에 공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원조 거부를 지시한 상태에서 외부의 지원물자 반입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내부적으로 큰 혼란이 벌어졌고 지원사업을 위한 남북 간 접촉창구도 거의 닫힌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함께나누는세상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코로나19까지 겹쳐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하였을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며 제3국의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하여 보건의료 물품 지원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코로나 방역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북한이 세관을 폐쇄하고 방역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통제 기간이 길어져 실제 반출로 이어지는 과정은 여전히 지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반드시 사업이 완료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북관계가 좋아 북한에 대한 인도지원과 개발지원, 관광 사업과 사회 문화 교류가 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습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구두로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였지만 남한은 문서 상의 사과와 약속을 요구하며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2010년 3월, 백령도 앞 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북한은 전면 부인하였지만 남한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짓고 교류를 전면 중단하는 5.24조치를 발표하며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다행히 북한의 어린이, 산모,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남한 정부도 보장을 하였고 북한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북한 어린이에게 우유와 분유를 지원하던 우리 함께나누는세상은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23일, 남측이 북측 영역에 포 사격을 했다고 주장하며 연평도를 포격하여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양측은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북 접촉과 지원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북한이 홍수 피해 등 자연재난을 당했을 때 긴급 구호를 위해 몇 차례 대북인도지원이 승인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류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2월, 남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을 이유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선언을 하고 북한이 공단 폐쇄와 자산 동결로 맞서 사실상 냉전체제로 재돌입하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말하면서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비쳤고 7월에는 독일에 방문하여 베를린 구상을 밝히는 등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 국면을 평화로 전환시키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도 화답하듯 2018년 신년사에서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말해 분위기가 반전되었습니다. 그해 열린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였고 남측의 대북인도지원단체들이 응원단을 꾸려 스키 경기에 참가한 북한 선수를 응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몇 차례의 특사 교환이 이루어졌고 결국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 평화체제 구축을 골자로 한 판문점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이후에도 5월과 9월에 정상회담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유엔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견인하여 6월 12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도 하였습니다. 남북관계는 호전되는 듯하였고 금방이라도 교류가 재개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실제 북한은 2018년 가을에 굳게 닫혔던 문을 열고 함께나누는세상을 포함한 남측의 인도지원단체들을 평양에 초청하여 사업 재개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길이 쉽게 열리지는 않았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미국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 기만당했다고 생각한 북한은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강경노선으로 선회하였습니다. 미국은 물론 남한에도 강경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미국 대선까지 별다른 이벤트 없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박빙이 예상되었던 대선은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내심 기대하였으나 트럼프가 북미 관계를 자신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하였을 뿐 실제로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현실적인 평가입니다. 바이든 후보의 대북정책은 아직 구체화 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의 맹주인 미국의 새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확정하고 담당자를 임명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대략 6개월 정도 걸리지 않겠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이때 한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남한은 북한에게 있어 중요 변수가 아닙니다. 국제법 상 정전협정에서 남한이 앉을 자리가 없고 북한의 생존에 가장 큰 실제적 영향력을 가진 것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8년에는 북한이 미국을 설득한 남한의 역할을 인정하고 한반도 정세 변화의 운전자 역할을 기대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이 없어 다시 싸늘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최고지도자를 국제적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분노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대선으로 정세가 바뀌었고 정책적 공백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냉랭한 반응 안에 담긴 미세한 메시지는 남한이 좀 더 힘을 써 달라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남한이 이 6개월 동안 운전자 역할이 아니라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함께나누는세상은 추후 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북측과 협의하여 콩우유(두유) 설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식량 부족으로 낙농업이 부진하여 우유를 생산하기 어려운 북한이 어린이의 영양을 보장하는 최선의 대안은 콩우유이기에 여러 남측 단체가 교류 초기부터 콩우유 생산설비를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교류가 끊긴 십여 년 사이 설비들이 낙후되고 고장 나 새롭게 설비하거나 수리를 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2018년 평양 방문 시 한 남한 지원단체가 십수 억 원을 들여 설비한 낙랑지역의 콩우유 생산 시설 일체를 둘러 보았는데 이제 수명이 다하여 새로운 수요가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지난 십여 년, 남북관계는 어두운 터널을 지났습니다. 추후 계획하는 콩우유 지원사업도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기계류 등의 북한 반출을 통제하는 유엔 대북제재, 코로나로 문을 걸어 잠그고 일체의 접촉을 거부하는 북측, 생산 설비와 위치, 규모 선정을 위한 전문 지식, 콩(곡류)의 지속적 공급, 재원 마련 등 첩첩산중입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들과 어린이들을 향한 인도주의와 인류애 실현을 위하여 함께나누는세상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어려운 중에서도 한 줄기 빛을 향해 방향을 찾고 길을 낼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한결같은 성원과 격려에 기대어 더욱 힘을 내겠습니다.
남한 단체가 설치한 낙랑구역 콩우유 생산기계. 보수와 재설비가 필요합니다.
남한 단체가 지원하여 건축한 병원, 남북관계 악화로 기자재 등 물품이 반출되지 못하여 굳게 잠겨있습니다.
평양시 장천남새(채소)전문협동농장을 방문한 남측 인도지원단체
* 이 글은 (재)함께나누는세상의 2021년 소식지(제10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