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선배 목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가족사며 자녀들 이야기 목회 이야기 등등을 하던 중 저에게 물으십니다.
“방 목사는 은퇴할 때 후임자에게 돈 받을 거야?”
저는 “전혀 받을 생각이 없어요, 지금은!”이라고 답했습니다.
복잡한 심정을 담은 짧은 질문과 답이었습니다. 은퇴하는 담임자가 후임자에게 은퇴비나 퇴직금 조로 돈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는 현실, 노후를 위한 생활 비용이 점점 증가하는 현실, 개체교회나 교단이 은퇴 목회자를 책임질 수 없다는 현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젊은 시절 목회를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어간다는 현실 등등. 슬픈 현실입니다. 후임자에게 은퇴금을 받는 것은 부도덕하거나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본능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지금은!’이라는 단서를 달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현실입니다. 거리에 나 앉을 수도 없고 교회에게 노후를 책임져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또 교회가 그런 능력도 없으니, 저도 막상 닥치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누가 압니까? 교회의 양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제 무능을 탓해야 될 지...
제 아내가 앞으로 10년 정도만 더 하고 은퇴하자는데, 그럼 부모님 계시는 강원도 인제에 가는 것 외에는 딱히 선택지가 없습니다. 지금은 사택이 제공되니 좋지만 대신 전세보증금 같은 고정 자산이 없으니 서울 생활은 꿈도 못 꿀 것 같습니다. 인제 산골에서 (아마도) 천 평이 좀 안 되는 땅에서 고추 농사를 짓게 될 것 같습니다. 가끔 부모님 도와드린 것 외에는 농사를 져 본 적도 없는데... 문득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하는 성경구절이 떠오릅니다. 수명 연장으로 인해 65세나 70세에 은퇴하면 그때부터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할 텐데 그땐 너무 늦는 것 같아 좀 일찍 은퇴를 하고 이후 할 일을 찾아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선배 목사님은 수도권 중소도시에 교회를 개척하여 지방 내에서는 가장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건축도 하고 주변 땅도 매입하다보니 적지 않은 부채가 있습니다. 그걸 다 갚고 나면 교회가 자신의 은퇴를 챙겨줄지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과연 은퇴 전에 부채를 청산할 수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올해 50여 명의 새신자가 등록하였다지만 대부분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이라니 말입니다.
자녀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선배 목사님의 두 아이가 다 감신대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합니다. 저는 선배 목사님이 좀 걱정됩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맏이는 하나님 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쩌다가 저는 좀 늦게 목사가 되었지만 제 큰 아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이 말을 하면서 세뇌를 시켰지요. 그런데 이 녀석이 고등학교를 들어가야 할 때 즈음 목회현장과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기쁨이 넘치고 사명감이 있지만 현실은 늘 쪼들리며 사는데,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목회를 하게 될 때 즈음이면 분명 더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목사가 되어야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건전한 직업을 갖고 사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라고 노선을 수정하였습니다. 제 큰아들은 올해 대학 조리과에 입학했습니다.
교회에 40대 이하 젊은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노인들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왕성히 교회재정에 이바지하는 교인들은, 아마 10년 후에는, 자기들 노후 챙기기도 버거워질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교회에 안 다니는 게 유행인데다 교회에 온다 해도 헌금을 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직장이 적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엄청나니까요. 물리적으로도 세계 최초로 한국은 출산율 1명 미만을 달성하였습니다. 초중고에서 매년 한 반씩 줄어들고 있답니다. 교회에 들어오는 수입은 줄고 노인처럼 돌봐줘야 할 인원은 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때 목회는 한다는 것은 정말 저 같은 날라리 목사 따위는 생각도 못할 엄청난 사명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목사는 필요하니까, 결국 부모나 일가의 지원이 가능한 사람들이 목회 현장에 남아있게 되겠지요. 대형교회 목사의 자녀들이나 뭐 그런... 명문 목회자 가문이 탄생하게 되겠네요. 지금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 목회자, 장로 자녀들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들었습니다.
선배 목사님은 자신의 인생을 거의 모두 바친 이 교회를 놓고 은퇴하기가 솔직히 아깝고 싫다고 하십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물론 세습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소위 ‘투 쿠션’, ‘쓰리 쿠션’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자녀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시건방을 떨었습니다. 막막하신가 봅니다. 저는 30여명 모이는 작은 교회를 하고 있긴 하지만 어쩌면 제 속이 더 편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늙어서 만나 차 한 잔이나 편하게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다가오는 미래, 아니 거창하게 미래라고하기도 뭐할 10년 후쯤? 한국교회의 상황은, 제가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1/3정도는 없어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젊은 사람 별로 없는 늙은 교회에 목회자도 늙어가고... 자연사하는 거지요. 저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니 그저 답답하고 막막하고 걱정스럽고 그렇기만 합니다. 그래도 교단의 똑똑한 어른이라는 분들이 이에 대한 대책도 고민하고 논의도 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100만이니 300만이니 철지난 전도운동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분들은 오히려 10년 내에 다 은퇴하시겠네요. 목회 막바지에 감독 감투에만 더 관심들이 많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저의 어설픈 예언이 ‘아무말 대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체질개선과 회춘(回春)이 시급한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저도 ‘꼰대’의 반열에 한 발 디딘 것 같습니다. 꼰대들이지만 지금이라도 모여서 머리띠 질끈 매고 밤새가면서 토론하고 계획 세우고 대책 만들어가면 좀 달라질 수 있을지도...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봅니다만...
하나님,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시고 지혜와 영감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