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종교분과 상임위원에 임명되어 '대통령 문재인'이 수여한 임명장도 받았다. 가문의 영광이다. 딱히 별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저 회의라도 꾸준히 참석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통일운동이라는 생각으로 가급적 회의에 참석하고자 애쓴다.
걸어왔던 별로 통일지향적이지 않은 발자취나 어쨌건 정권의 가락에 따라 춤을 춰야하는 조직적 한계, 게다가 입신양명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들이 모인 모임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화해를 위해 공동선언을 이끌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부담김이 들어 결국 수락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같은 민주평통 상위위원인 선배 목사님이 전화를 해오셨다. 민주평통에서 10월말에 평양방문을 추진 중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가슴이 설렜다. 물론 조만간 내가 하는 대북인도지원 사업으로 방북하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이렇게 하나둘 문이 열리고 있다니 빨리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나 선배님은 비용이 좀 많이 든다고 말끝을 흐린다. 3~5일에 실비가 150~200만원 정도 드니 대략 300만원 정도 내라고 하나보다 생각했다.
오늘 나에게도 전화가 왔다. 우선 일정 소개도 없이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물론 급하게 추진되는 일정이니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참여인원 파악의 목적이 우선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참가비용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
500만원!
내가 두 달을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이다. 아내와 둘이 벌어도 한 달에 만질 수 없는 금액이라... 아쉼움을 뒤로 하고 비용이 부담스러워 참가하기 어렵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주위에 4박5일 여행 혹은 공무, 선교 등을 위해 개인적 지출 500만원을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뿐이었다.
아쉽다.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기보다 통일, 민족의 교류가 결국은 돈 있고 힘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이해는 한다. 지금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는 중이다. 국가차원에서 쉽게 자금을 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평통 같은 단체가 가는데 빈 손을 갈 수도 없는 일이지 않는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입맛은 쓰다. 돈 없는 이들은 민족의 교류 협력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이 들려서 말이다. 게다가 무산자들의 낙원, 프롤레타리아의 천국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에 돈이 없어서 못 간다는 것도 이율배반 같이 느껴진다.
아직 갈 길이 머니까 이해를 하고 넘어가자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돈과 힘으로 문을 열어주면 그때 뒤따라가면 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열린 문과 국경의 모양이라는 것이 결국 지금 여기와 똑같은 세상이 될까봐 아쉬울 뿐이다.
특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만의 통일이 아니라 모두의 통일이 되기를 바란다. 통일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수많은 좋은 단어들, 평화, 민주, 자주...에 '모두의'라는 단어도 하나 더 추가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