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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들의 교통과 나눔을 위한 느슨한 연대와 네트워크가 절실히 필요하다



 



봄길교회를 나와 장균 목사가 알려준 새로 생긴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차도 거의 안 다니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해변로를 따라 바람을 맞으며 달린다. 도시와 교외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다. 같은 24시간이지만 30시간 같이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이다. 바람을 따라 해변도로를 따라 다산초당에 왔다. 입구의 기념관 한켠에 앉아 한참동안 책을 읽었다.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다 읽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진을 지나 보성으로 향한다. 잘 뚫린 왕복 4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영 흥이 나지 않는다.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를 싸라 쌩쌩 달리는 차들을 따라가다 보니 여행의 맛이 사라진다. 잠시 멈춰 지도를 찾아보고 왕복 2차선, 시속 60Km 제한인 지방도로로 들어섰다. 구불구불한 도로가 신나게 달리지는 못하게 하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는 한가로운 풍경을 여기저기에 펼쳐 놓는다.



 



4차선 도로는 개발, 도시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속도전, 경쟁을 현실화한다. 그러나 그 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앞만 보고 표지판과 이정표만 응시하고 목적지를 향해 곧바로 달려가게 할 뿐이다. 그러나 2차선 도로는 인간적인 정감이 느껴진다. 길가에 나와 앉은 노인네 얼굴의 주름까지도 들여다볼 여유를 준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4차선 도로가 미덕이라고 강요하고 더 많은 4차선, 8차선 도로를 닦아야 한다고 부추긴다. 그래서인지 점점 사람 사는 맛을 잃는 것 같다. 2차선 도로를 달리면 인생과 자연을 본다. 그리고 생명에 목마른 내 마음을 읽게 된다. 얼마를 가는데 갑자기 한 마리 벌레가 시야로 들어오더니 헬멧과 선글라스 사이를 탁 쳤다. 그리고는 눈썹 위가 따끔하다. 놀라서 차를 세우고 보니 무엇인가 형체는 사라졌지만 아무래도 벌인 것 같다. 이마를 한참 문지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좀 더 가다보니 율어면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율어면!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지명이 익숙할 것이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려 싸여 천혜의 요새 혹은 도피처가 되었다는 곳이다. 율어면을 지나 고개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그 소설의 내용이 살아오는 듯하다. 조금 더 가니 외서면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방향이 조금 어긋나기는 하지만 외서면으로 돌아간다. 외서면도 역시 태백산맥에 나오는 지명이다. 여기에 외서댁이라는 여성이 나오는데 외모가 예뻤는지 혼란한 시대에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들에 의해 성적인 수탈을 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수탈의 역사를 외서댁에 의해 상징했는가, 외서면은 조용하고 아담한 작은 동네이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잠시 선다. 대학시절 종강MT로 보성에 왔을 때 최재봉 목사가 안내하여 와봤던 곳이다. 그 당시에는 아기자기한 작은 토속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엄청난 주차장에 입장료도 받았다.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이런저런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본다. 아무래도 26일간의 휴가가 반토막이 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순천에 들어섰다. 토요일 저녁, 마땅히 찾아갈 사람이 없다. 목사들은 주일 준비에 바쁠 것이다. 우연히 하늘씨앗교회에서 전남동부 예수살기 모임이 진행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혹시나 하고 갔더니 막 모임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하려던 중이었다. 거기에는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쉬운 점은 알고 있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 남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일이 다 만나고 가기에는 일정이 만만치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한꺼번에 한 자리에서 다 만나고 식사도 나눌 수 있었으니 행운이다. 한성수 목사님, 이승진 목사님, 장연승 목사님, 김광철 목사님, 유은혁 목사님, 오현일 목사님, 김상진 목사님, 또 누가 빠졌나? 아무튼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과 잠시나마 좋은 시간을 가졌다.



 



부담을 주기 싫어 찜질방을 찾으려고 했더니 장연승 목사가 굳이 자기 집에 가자고 하여 속으로는 기쁘면서 마지 못하는 척 따라 나섰다. 장 목사의 차는 4인승 화물차이다. 화물칸에 오토바이를 싣고 벌교원동교회로 향했다.



  



벌교원동교회는 당당뉴스 이필완 목사님이 시무하기도 했던 교회이다. 장연승 목사는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벌교에 머물렀다고 한다. 벌교원동교회에서 이미 12년을 목회했다. 그 전에 잠시 보성의 주봉교회에 있었다. 벌교는 이제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사택은 고풍스러운 기와집이다. 교회에서는 지역아동센터도 읍내에서 운영한다. 장 목사는 지역 초등학교에 유기농 급식재료를 납품하는 일도 한단다. 작은 규모의 교회이지만 알차게 목회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손님방으로 들어서니 다기세트와 음료가 비치되어 있다. 장 목사가 직접 덕구었다는 녹차와 홍차를 마시면서 새벽 2시 반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에 대한 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 목회이야기 등등. 장 목사는 교회개혁은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교회는 사회와 철저하게 분리 혹은 고립되어 있어서 교회개혁이나 교단민주화 등의 주제는 실효를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가 세상의 한 가운데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 자체를 위한 교회 자체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세상의 한 가운데서 좋은 일을 꾸미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지역아동센터 운영이나 유기농 식자재 납품 등의 일 외에 지역의 개혁적인 모임과 단체에 깊이 관여하여 일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아제는 여기에서 평생을 살 작정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규모가 큰 농사를 제대로 지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교회가 도시에서 대형화를 꿈꾸기에 참된 목회가 사라지고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러나 그는 작은교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각자의 일을 하면서 서로 교통하고 생각과 고민을 나누는 느슨한 연대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큰 폭발력을 갖게 될 날이 있을 때 꾸준하게 네트워크를 유지한다면 서로에게도 힘이 되고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날 친구가 되었다. 장 목사와 허심탄회하게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내 평소의 생각들과 대동소이하다. 우리는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 좋은 친구로 남을 것이다. 확신하건대, 나만 변절하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독특한 벌교원동교회를 구경했다. 반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컴퓨터와 터치스크린 모니터로 구축한 활용적인 찬양반주 시스템, 통나무를 활용하여 만든 강대상, 예배당 입구에 전시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조르쥬 루오의 시리즈 성화가 독특하게 눈길을 사로잡았다. 확실히 장연승 목사는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사람이다.



새로운 친구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후배가 목회하는 순천의 한 교회를 향해 악셀레이터를 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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