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던 성형외과 수술을 받았습니다.

by 방현섭 posted Nov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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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한 달 전쯤 돋보기를 맞추려고 안과에 갔었습니다. 검진받고 안경원에 주문하고 나오는데 아내가 제 손을 잡아끌고 성형외과로 향했습니다. 눈꺼풀이 무겁고 눈가가 짓물러 좀 불편하던 차라 얼떨결에 따라 들어가 병원 상담사와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제 눈두덩이와 눈꺼풀의 상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 눈동자의 검은자위가 채 반도 안 보인다는 것도 그날 알았습니다. 상안검, 하안검에 쌍꺼풀까지, 수술 비용이 제 한 달 수입인데도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왔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했던 수술입니다만 제 인생에는 없을 거로 생각했던 성형외과 수술을 다 받게 되었네요.
지난 월요일이 수술 날짜라 오후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세 시간 동안 그리고 자르고 지지고 꿰매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별로 안 아플 거라고 했는데... 저는 많이 아팠습니다. 제 눈두덩이에는 지방이 무척 많고 지방에 연결된 혈관이 깊어서 그렇답니다. 선생님은 '아픈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며 담담하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저 주먹을 꼭 쥐고 고통을 참아야 했습니다. 제 눈두덩이가 그렇게 두툼 불룩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수술이 끝나 눈가에 테이프를 잔뜩 처붙이고 집에 와서는 얼음팩을 눈 위에 올려놓고 꼬박 사흘을 누워있었습니다. 그래야 멍과 부기가 빨리 빠진다고 합니다. 온종일 누워있으려니 허리도 너무 아프고 냉찜질을 하느라 뭘 볼 수가 없으니 음악도 듣고 팟캐스트 방송도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너무 지루했습니다. 수요일 오후에 소독하러 병원을 다시 찾으니 선생님이 잠깐 와서 '눈 크게 뜨세요', '위에 쳐다보세요' 하더니 '좋아요' 한마디 하고 가십니다. 목요일부터 단체 사무실에 출근하고 토요일에 다시 가서 실밥을 뽑고 모든 과정을 마쳤습니다. 3~6개월 지나면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합니다.
지루하게 누워있었지만 유익한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습니다. '알릴레오's 북'에서 소스타인 베블런이 1899년에 쓴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는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생산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한가하게 놀면서 레저나 즐기며(유한/遊閑) 과시적 소비를 일삼는 계급을 관찰한 책인데 이들이 사회적 예절과 기준, 유행을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모방하려는 하층계급들의 심리에 대해 분석하였습니다. 이들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또 윤흥길 작가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이야기도 했는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초대되어 자신이 성남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8.10성남민권운동(광주대단지 사건) 경험도 나누었습니다. 이 후보는 사법고시에 합격하면서 상류사회로 진입할 기회가 있었지만, 빈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외에도 인생이란 무엇일까, 신은 무엇일까, 오늘날 신앙이란 어떤 의미일까, 바람직한 미래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생각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세상 말로 '팔자에도 없는' 성형수술을 하고 누워있으면서 반쪽짜리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여유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덕분에 주일 준비를 밀려서 하느라고 마음은 무척 분주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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